“따뜻한 말 한마디에 여자들은 큰 힘을 얻어요. 그게 네트워크의 힘이죠.
남편에게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위로라고나 할까요?”
오후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주 잘 만든 워킹맘의 성장 동화 같은 두 시간의 인터뷰가 끝이 났다. 어느 것 하나 떼어내고 솎아낼 것이 없는 이 알토란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후배 워킹맘들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어깨가 묵직해졌다. 하루 24시간도 부족한 워킹맘 김정현 이사가 선뜻 두 시간을 내어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전투 같은 일상 시작
한국 휴랫팩커드(HP) 김정현 이사(47).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HP에 입사해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한 이듬해 계획된 임신으로 건강한 첫딸을 출산했다. “당시에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었다”는 그녀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김 이사의 ‘진짜 인생’이 시작된 것은 출산 직후부터다.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잘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그게 아니다 싶었어요. 일단 저는 아이에게 해줄 거 다 해주는데, 대체 왜 우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한 번도 맞닥뜨리지 않은 상황을 겪으면서 한동안 우울했어요. 아이를 안고 있으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더라고요.”
산후조리를 돕던 시어머니가 본가로 가실 때, 3주 된 아이를 안고 친정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간 건 험난한 ‘워킹맘 레이스’의 시작에 불과했다. 2개월의 출산 휴가를 마친 뒤 교직에 몸담고 있는 친정어머니를 대신해 이모에게 딸아이를 맡기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솔직히 아쉬움보다는 홀가분함이 컸다. 하지만 6개월 후 김 이사는 딸아이를 들쳐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바라던 아이’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둘 사이는 좋아졌지만, 거의 전투와 같은 생활이 이어졌어요. 30대 초반은 제 인생의 암흑기로 기억될 정도예요. 나는 없고, 오로지 아이와 회사만 있던 시절이었죠.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요. 퇴근 후 아이가 방긋방긋 웃는 걸 봐도 ‘얘는 대체 내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반기나’ 했었죠(웃음).”
딸아이는 재택 육아를 하는 이웃집에 맡겼다. 하지만 퇴근 후 집안일과 남은 육아는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었다. 설거지 한 번으로도 손에 습진이 생기는 남편에게는 아예 가사분담을 기대하지 못했다.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긴 동료들의 신세 한탄은 사치스럽게 들렸다. 적어도 갑작스러운 야근을 할 때 아이를 봐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종종걸음 칠 일은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야근은 낫다. 해외출장이라도 있을 때면 일단 부모님 댁에 들러 아이를 맡긴 뒤, 출장길에 올랐다. 남편은 중국에, 김 이사는 미국에, 아이는 한국에 있던 적도 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여섯 살배기 딸이 처음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가는 내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혔다.
워킹맘의 가장 큰 위기는 아이가 아플 때 온다. 한번은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한창 활발해야 할 두 돌배기가 가만히 누워 있더란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낮에 넘어졌는데, 괜찮을 거야”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검사를 하니 팔꿈치가 부러졌더란다. ‘말도 못 하는 어린 것이 얼마나 아팠을까?’ 이 참에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돌봐야겠다고 마음먹으려는 찰나, 회사 여자 선배들이 그녀를 붙잡았다. 오전 10시 회진 시간까지 아이를 돌보다가 출근할 수 있도록 담당 부장에게 배려를 부탁한 것도, 또 일이 밀리지 않도록 수시로 업무 상황을 보고해준 것도 모두 여자 선배들이었다.
“이후에도 회사를 그만둔다는 생각을 몇 차례 했어요. 그때마다 선배들이 제가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가야 하는가에 대해 알려줬어요. 그런 도움을 받다 보니 저도 후배들에게 그 은혜를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죠.”
이후 김 이사가 경리 파트의 부서장이 되었을 때 세운 원칙은 하나였다. ‘일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 대신, 결과에 대해서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 수혜자는 오히려 남자 직원들이었다. 오전 7시에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늦은 출근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업무 성과? 더 좋아졌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늘어나니 당연히 부서 분위기도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낳고 3일 만에 재택근무 시작
“결혼 후 아이를 낳고도 계속 직장을 다닐 사람을 원한다”는 면접관의 이야기에 국내 굴지의 은행이 아닌, 당시 직원이 200여 명이 채 안 되었던 외국계 기업 HP를 택한 것이 벌써 23년 전 일이다. 입사 초기에는 전공인 법학을 살려 계약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김 이사는 이후 경리 업무에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급여 업무를 맡았을 때는 길일을 잡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월급 지급에 무리가 없는 날을 골라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던 중 1999년 HP의 분사가 결정되었다. 분사에 앞서 국세청 감사를 해야 했는데, 당시 김 이사가 감사인들의 질문에 답하는 책임자를 맡았다. 6개월간 오전 7시 출근, 새벽 2시 퇴근을 했다. 로펌의 회계사가 그녀의 체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당시 내가 왜 결혼을 했나 싶었다”는 말을 듣고, ‘감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과했나 보다’ 짐작했으나, 김 이사의 답은 “일이 이렇게 재밌을 줄 알았으면 결혼을 안 하는 건데(웃음)”였다.
새벽에 집에 들어갔으면 잠시 눈 붙이고 옷만 갈아입고 나오면 좋겠지만, 밥을 짓고 아이를 유치원 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도 그건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했기 때문에 포기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미혼인 입사 동기가 망설임 없이 홍콩 본사 근무를 지원하는 것을 보고는 불쑥불쑥 결혼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6개월간의 감사가 끝난 후에는 일상이 느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육아 말고는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없었다”는 김 이사답게, 이 시기에 둘째를 갖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김 이사가 경리 분야의 분사 책임자가 되면서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떠맡았기 때문이다.
“우리 둘째가 좀 극성맞거든요(웃음). 제가 분사 준비할 때 배 속에 있어서 ‘분사둥이’라고 불렀어요. 그때 거의 투쟁적으로 5년 치 회사 경리장부를 다 나눠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직원들이 서류를 넘기지 않으면 빚쟁이처럼 쪼아대곤 했거든요. 가끔 둘째가 저한테 그러는 걸 보면서 ‘아, 이건 내가 태교를 안 한 탓이다’라며 반성을 하죠(웃음).”
출산 예정일은 9월 22일. 11월 1일 분사일 전에 일찌감치 쉬고 돌아오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9월 초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그러나 휴가 첫날, “결산 작업에 에러가 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밤 9시, 회사에 아무도 없을 때 ‘야간 출근’을 했다. 출산휴가 중 나와서 일하는 걸 다른 여직원들이 볼까봐, 너무 일만 한다며 불만이던 남편이 알까봐, 그때부터 첩보전을 치르듯 ‘몰래 업무’가 시작됐다.
“워킹맘들은 여기저기 눈치를 봐요.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모든 사람에게 미안한 거예요. 그 미안함이 나쁜 쪽으로 기울면, 미워하기 시작하는 거고요. 물론 애들 탓은 아니니까 아이들에게는 그런 맘이 들지 않는데, 남편은 미웠다가 미안하다가, 미웠다가 미안하다가를 반복하면서 살게 되죠.”
드디어 9월 22일 예정일에 맞춰 둘째 딸을 순산한 다음날, 김 이사는 이메일부터 열어봤다. 아무도 못 말릴 근성이다. 그때부터는 아예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입주 도우미 아주머니가 온 첫날 아침, 침대에 누워 압력밥솥이 ‘치익치익’ 밥하는 소리를 듣던 순간의 감동을 김 이사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출산 3일 만에 재택근무를 시작했으나 아무래도 진도가 나가지 않아 급기야 2주 만에 출근을 했다. 그랬더니 한 남자 매니저가 “김정현은 출산 2주 만에 회사에 나왔는데, 너도 그러면 안 되겠느냐”며 한 후배 여직원을 채근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료 여직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부리나케 그 매니저를 찾아가 호통을 쳤다. 서른다섯 살의 출산, 아무리 워커홀릭이라 할지라도 회사가 좋아서 나왔을 리 만무하다는 걸, 그가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제 행동으로 인해 나중에 회사에서 여직원들에게 쓸데없는 기대를 할까봐 조심스러웠어요. 다른 여직원들이 보다 다니기 좋은 회사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무사히 분사를 마치고 보란 듯이 미뤄두었던 출산휴가를 찾아 썼죠.”
워킹맘을 위한 배려가 절실해지나고 나니 참 순한 아이였다는 걸 실감한다는 큰딸이 벌써 고등학교 3학년, 작은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됐다. 여전히 김 이사의 아침은 치열하다. 오전 6시 전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해서 일찍 등교하는 큰아이와 함께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하는 틈틈히 남편과 작은아이를 위해 또 한 번 상을 차린다. 그나마 요즘은 업무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어서 둘째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집에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24시간 업무 체제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워킹맘이 가진 양날의 검이다. 전날도 새벽 2시까지 일을 했고, 다가올 주말도 고스란히 회사 일에 바쳐야 한다.
“워킹맘은 일에 있어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해놔야 해요. 제가 첫아이 키우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깨달은 것은 저한테 중요한 것은 내 아이, 내 가족이라는 거예요. 회사 일은 미리 당겨서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일을 하는 데 있어 밤낮이 따로 없어요.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일을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하기 위한 온갖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어야 해요. 어쩔 수 없이 얼리어답터가 되는 거죠.”
일하는 엄마의 발목을 잡는 또 하나의 난관은 초등학교의 재량 휴일이다. 그날은 학교가 문을 닫으니,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은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김 이사는 지난주 재량 휴일에 휴가를 내고 딸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전에 12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승합차까지 빌려서 한 체험마을에 다녀온 것이 알려지면서, 김 이사의 재량 휴일 프로그램을 은근히 기대하는 엄마들도 생겼다.
“저는 그나마 휴가를 낼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워킹맘들이 더 많으니 재량 휴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거 같아요. 학교 도서관을 열고 자원봉사 선생님을 두거나, 재량 휴일에 엄마나 아빠가 쉴 수 있게 한다든가 하는 정부 차원의 해법이 절실해요.”
전업주부 엄마를 둔 아이들과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이 은근히 갈린다는 건 이젠 공공연한 비밀이다. 워킹맘들의 ‘정보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엄마가 직장에 나가 있는 아이들이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불러내 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을 긋게 된다는 것이 전업주부 엄마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하지만, 이해하죠. 하지만 워킹맘들이 뭔가를 마음먹고 하면 집에 있는 엄마들보다 잘할 때도 있어요.”
김 이사는 둘째 아이의 공부 습관을 키워주기 위해 매일 2시간씩 함께 영어와 수학을 공부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6개월을 그리 했더니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붙었다. 1학년 때 영어대회에 나가서 5, 6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4등을 차지한 것도 그 덕이다. 이후 3학년 때 또 한 번 영어대회 출전 자격을 얻었을 때, 김 이사는 육아 문제로 막 회사를 그만둔 전직 워킹맘 엄마와 연합해 새벽까지 대회 준비를 함께했다. 평소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실력을 백분 활용한 워킹맘들의 서포트 덕분이었을까. 20여 개 학교 대표들이 출전한 구청 주최 영어대회에서 이 팀이 1등을 차지했다.
“집에 있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그만큼 엄마의 관심, 격려, 응원, 사랑을 더 받을 수 있잖아요. 정말 힘들지만 직장에 다니는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인 거 같아요. 내 자식의 일이잖아요? ‘아이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낭만적인 생각으로 내버려두면 결국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요.”
워킹맘으로 살면서, 김 이사는 겸손을 배웠다고 했다. 세상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배웠고, 또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관계를 통해서 배웠다.
“끝이 안 보이게 힘든 시기였는데, 선배들이 힘을 줬어요. ‘두 돌만 지나면 인간이 되니까 걱정 마(웃음). 그 시기만 넘기면 정말 괜찮아’라고. 그런데 두 돌이 지나도 여전히 힘이 드는 거예요. 속은 거 같다고 했더니 ‘그래도 기저귀는 안 갈잖니? 글을 깨우치면 좀 더 인간이 돼’라고 하고(웃음). 선배들이 한 단계씩 저를 깨우쳐주었던 거죠.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제가 후배들에게 ‘두 돌만 지나면 인간이 돼’라는 얘기를 하고 있더군요(웃음).”
분사 이후 흐지부지 사라진 여직원 모임을 김 이사가 다시 꾸린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웹 사이트도 만들고 회사에 요구해 여직원을 위한 휴게실과 수유실도 받아냈다. 공식 네트워크가 생기자 여직원들 간의 유대가 더욱 돈독해졌다. 워킹맘의 멘토는 적어도 서너 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HP의 사내 여직원 모임 ‘WAVE’를 일구는 밑거름이 되었다.
“남자들의 네트워크에는 분명 목적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만난 여성 네트워크는 몇 되지는 않지만, 대부분 순수해요. 모임의 취지는 오직 하나,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자신이 넘어온 이 힘든 언덕을 후배들은 수월하게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거죠.”
말단사원에서 시작해 성공적으로 임원에 오른 여성 전문 경영인 40여 명이 주축이 되어 2009년 3월 여성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WIN(Women in INovation, www.win.or.kr)’ 모임에서 김 이사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고 한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후배와 자녀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며 자신과 아이, 가족,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으면서 살았던 지난 생활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이다. 작년 WIN의 포럼의 포맷을 활용해 사내 여직원 모임 WAVE에서 멘토링의 장을 열어 좋은 성과를 거둔 바 있는 김정현 이사는 오는 5월 24일로 예정된 WIN의 멘토링 행사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협력업체는 물론 경쟁사 여직원들에게도 참여를 독려하는 등 홍보에도 열심이다.
“과거 여직원회 선배가 육아 문제와 회사일로 고민하는 저에게 ‘결국 열어보면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 모두의 고민인데, 혼자서 극단적인 상황까지 내몰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해주었어요. 이런 여성 멘토링 활동이 꾸준히 지속될 때 워킹맘들이 함께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Happy mom is better mom’. 김정현 이사가 전날 접한 글이라며 소개해줬다.
행복한 엄마가 곧 좋은 엄마라는 건, 곧 내가 행복해야 엄마로서도 행복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과연 행복한 엄마일까? 곰곰이 생각해도 알 수 없다면 훌륭한 거울이 되어줄 인생의 선배부터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